2012년 5월 24일 목요일

[Korea]Chu-sa House

 

오늘 블로깅을 할 건축물은

  충남 예산에 위치하고 있는 추사고택입니다!!^^

       
 스쿠터 타고 보고다녔던 지도입니다.ㅎㅎ                                        충남 예산에 위치


  포스팅을 하기전에 추사 김정희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대표적인 서화가로, 조선 후기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분입니다. 청나라의 고증학풍을 맞이해 재해석, 조선 후기 문화를 일신하였으며, 이에 경학, 금석학, 문자학, 역사학, 지리학, 불교학, 천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한 실학자로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대표적인 서예가로서 특히 예서, 행서의 새 경지를 이룩했으며, '추사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옛날 타이포 그래피 디자이너셨네요^^ 추사고택에서 찍은 추사체입니다.

  문득 추사고택을 건축한 건축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봤습니다.


  "고택은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라고 합니다.

 김한신(金漢藎)에 대하여
1720년(숙종 46)∼1758년(영조 3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유보(幼輔). 아버지는 영의정흥경(興慶)이며, 어머니는 황하영(黃夏英)의 딸이다.

1732년에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和順翁主)에게 장가들어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제용감제조를 지냈다.

키가 크고 인물이 준수했으며 재주가 총명하였다. 특히, 글씨를 잘 썼으며, 그 중에서도 팔분체(八分體)에 뛰어나, 애책문(哀册文)·시책문(諡册文) 등을 많이 썼고, 전각(篆刻)에도 뛰어나 인보(印寶)를 전각하였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수원에서 스쿠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 해메다가 결국 오후 4시쯤 도착하였습니다. ㅎㅎ

  아직 스쿠터 여행 초기라 엄청 해맸었죠... 중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여쭤보며 한참을 헤맸습니다...ㅠ

  .

  추사고택은 잘꾸며져 있고 주변경치도 좋아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손꼽히는데요. 제가 도착했을때도 한무리의 SBS촬영팀이 와 있었습니다.

  음.... 드라마 이름은 기억나진 않지만, 혹여나 연예인들을 볼까봐 기대했지만...끝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ㅠ

  드라마를 찍는다고 추사고택 내에 있는 시설물들을 영화분위기에 맞게 고치고 있었죠..... 부시고, 심고.....;;;



  추사고택 내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은 주변지역에 대해 상당히 높은 단계의 지배권을 갖는 지역의 통치자였습니다. 반가는 주변 농가와 대비되어 통치자의 권위와 위계를 과시할 사회미로 무장해야 했는데요. 그 역할을 솟을대문이 담당했었죠.  서양이 지배계층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높은 건물을 짓고 많은 장식을 한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의 솟을대문은 바깥세계와 일정한 분리를 이루어 반가 자신에 독립성을 줌으로써 권위를 지킴과 동시에 주변마을과 동질화를 이루어 공동체의식을 형성하고 화목을 도모하는 양면작전인 것입니다.

우리의 그것은 담백하다는 것이죠. 욕심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장식으로만 해냅니다. 층계의 차이로도 구분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주위와 어울립니다. 혼자튀지 않습니다.

  외국의 화려한 고 건축보다는 외소하지만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는 이런형식의 건축이 더 좋네요^^




  제가 여행다녔을때 당시 그렸던 스케치입니다. 어잌후 벌써 2년이나 지났네요.....

  5분만에 그린 스케치라 날림입니다..ㅎㅎ


  공간을 느껴보기전에 추사고택의 평면 배치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검은색의 부분이 솟을대문입니다.

  곧바로 들어가면 'ㄱ'형태의 사랑채가 있습니다.(주황색부분) 사랑채는 집의 주인이 사는 공간인데요. 남자가 사는 공간으로 접대용 공간, 서재 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앞의 마당이 사랑마당입니다.

  그리고 더 들어가면 'ㅁ'형태의 안채가 있습니다.(옥색부분) 안채는 안주인이 사는 공간입니다. 여성들이 사는 곳으로 주방등 여성들의 공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뒷부분에 사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은 추사 김정희를 모신 부분으로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죠.




  자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곳곳에 추사김정희의 추사체로된 글들이 보입니다^^




  아아 가슴아프게...제가 간 그때에는 촬영을 위해 내부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습니다...ㅠㅠ 사랑채와 마당이 공사판이 되어 있었습니다...ㅠㅠ
   도대체 무슨 장면이길래 이렇게 초토화가 되어있었을까요...?;;;


  어쩔 수없이 다른공간을 느껴보기 위해 안채로 들어갑니다.



 'ㅁ'자 배치의 안채입니다. 이 공간은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조금 마당 자체도 좁고 햇빛이 비춰지는 공간도 상당히 적습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입니다.













  사당은 조선시대 반가에서 조상의 신주(위패)를 모신 건물로, 주로 중상류주택에 건축되었습니다. 사당은 거주자들의 일상행동을 제어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조상신이 거주하는 상위공간으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심성 및 정신적 의미로서 위계성.영역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당은 안채와 사랑채를 짓기 전 제일 먼저 지어야 하고 대개 안채의 동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집을 수리하거나 이건할때를 제외하고는 사당을 헐지 않을 정도로 사당은 중상류층의 주거공간에서 상당히 중요한 존재이죠...

  추사고택의 사당에는 당연히 추사 김정희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협문입니다. 협문은 중심축선상이 아닌 측면 부속건물로 이동하기 위해 샛담에 달린 문을 가리키는데요.

  사당으로 들어가는 협문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도록 되어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조상들이 모셔져있는 공간에 들어서는 문이니 만큼 예의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사당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사당은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조상들이 후손들의 일상생활을 제어한다는 상징적 공간인 만큼 아래의 사랑채와 안채가 훤히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깥으로 보여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풍경.... 이것이야 말로 한옥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추사고택은 정말 아름다운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류층의 주거공간 배치를 볼 수있는 공간일뿐더러 무엇보다 건물 자체가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솟을대문과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이어지는 공간배치.

  제가 갈때는 추사고택 기념관이 따로 없었던것 같은데 요새는 기념관도 생겼나 보더군요^^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