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4일 목요일

[Korea_Architecutre]건축답사 _ 남간정사 (Falling Water House)


낙수장(Falling Water)라는 건축물을 아시나요? 건축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폭포위에 지은 이 집을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도 낙수장과 비슷한 건축물이 있다면 믿으시겠나요?!ㅎㅎ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낙수장 못지않은 멋진 건축물이 존재합니다!

언제나 서양 건축물에 밀려 우리나라 건축물은 조명되지 않는게 현실인데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훌륭한 건축물이 있다는것을 알려드리기 위해 포스팅을 합니다.

오늘 포스팅할 한국 건축물은 그 바로바로! '남간정사'입니다!



미국 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리고 낙수장.



 너무나도 유명한. 미국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_Frank Lioyd Wright(1867~1959)' 입니다.

 그의대한 소개를 짧게 하자면. 그는 종종 르코르뷔지에, 미스 반데어로에와 함께 20세기 3대 건축가로 꼽히는데요, 미국이라는 신대륙에서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건축 사상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이들보다 더 높게 평가되기도 합니다.

 라이트는 건축이란 자연을 지배하고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야 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주택은 미국의 자연 환경과 미국인들의 생활상에 적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건축 철학하에, 그는 평생동안 미국 건축을 대표하는 수만은 걸작을 남겼는데요...

 그 걸작 중 하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하면 떠오르는 낙수장(Falling Water)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폭포위에 지은집이기 때문에 이름이 Falling Water입니다. ㅎㅎ

  건축공부 초기 처음 이 건물을 보았을때 이 건물은 저에게 엄청난 센세이션이 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폭포위에 건물을 지을 생각을 다 했지?" 라며 감탄을 했었지요....!

  위의 그의 소개에서 보셨듯이. 그는 자연을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낙수장이 그의 건축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동양의 건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자연과 어우러지는 동양건축의 아름다움에 반한 외국 건축가중 한명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낙수장(Falling Water) '남간정사'! 



  우리나라에도 낙수장이 있다는걸 알고 계시나요?!ㅎㅎ 사실 이건 저도 여행전에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대전 둔산선사유적지를 돌아다니던중 우연히 그곳 가이드에게 "건축 공부하시는 분같은데 낙수장 아시죠?"

  "우리나라에도 낙수장과 비슷한 건축물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라고 저에게 질문 하더군요...!

  낙수장이라니...우리나라에도 낙수장과 같은 건물이 있었단 말인가?! 하고 그 가이드를 졸라

 위치를 알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길로 곧바로 스쿠터를 타고 내달렸죠!!(전국 스쿠터여행중...)



  두둥 남간정사 입구에 쓰여져 있는 글들입니다. 남간정사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는데 잠시 남간정사라는 건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지은 것이다.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다. 숙종 9년(1683)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깊은 곳이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뒷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시대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뒷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또한 송시열의 문집인 『송자대전』 목판을 보관한 장판각이 맞은편 언덕에 있다.

 송시열과 관련된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

  위의 글들에 덧붙여 남간정사는 우리나라의 유형문화제 제4호로 지정되었고 동구 가양동 65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건축물은 학원같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병산서원도 마찬가지고, 도산서원 역시 제자들을 가르치는 공간입니다.


  옛말에 풍경이 좋으면 공부가 안된다고 하던데.... 위에 열거한 여러 서원들은 모두 절경을 뽐내고 있었지요.... 그런 곳에서 공부하면 빼어난 절경을 바라보느라 공부가 안 되었을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솟을 대문을 지나 나오는 풍경입니다....!!!

  나름 도심속에 있는 공원이라 그리 멋진 풍경은 나오지 않을거라 예상했는데...!!

  예상을 깨버리는 멋진 풍경입니다...!!





  저기보이는 저 건물이 남간정사입니다. 저 건물 밑에는 물이 흐르고 있더랬죠. 위의 계곡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건물 아래로 지나 호로 모입니다....!!

  옛날에는 물이 많이 흘렀다고 하던데... 지금은 조금씩밖에 흐르지 않더라구요...ㅠㅠ

  그래도 절경이 너무 너무 멋지네요...!!




  필요없는 풍광들은 담벼락으로 가려냅니다. 선인들의 지혜죠...ㅎㅎ




  인증샷...!!(포동포동 하네요....ㅠㅠ)









  저기 보이는 틈새사이로 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습니다...!! ㅎㅎ

  낙수장 만큼 거대한 폭포는 아니지만 건물 밑에 물이 흐른다는 느낌과 멋진 풍경....

  정말 멋진 우리나라판 낙수장입니다..

  아니 시대로 보나 뭐로보나 낙수장이 '미국판 남간정사'라고 봐도 무관하겠군요...!!!




  우리나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뭐니뭐니 해도 자연과의 조화입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

  예로부터 우리나라 선대 건축가들이 추구했던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추구했던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내리는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도 미국 사람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네요...!!

  앞으론 미국사람들이 당신네들이 자랑할 건축물이 있다면 말해보라! 라고 얘기하면

  이렇게 얘기 합시다...!!

  "너네가 자랑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 그건 이미 우리나라에 몇백년 전부터 있었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간정사라고.... 어쩌면 낙수장이 미국판 남간정사라고 해야할지도 몰라!" 

[Korea]Chu-sa House

 

오늘 블로깅을 할 건축물은

  충남 예산에 위치하고 있는 추사고택입니다!!^^

       
 스쿠터 타고 보고다녔던 지도입니다.ㅎㅎ                                        충남 예산에 위치


  포스팅을 하기전에 추사 김정희에 대하여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대표적인 서화가로, 조선 후기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분입니다. 청나라의 고증학풍을 맞이해 재해석, 조선 후기 문화를 일신하였으며, 이에 경학, 금석학, 문자학, 역사학, 지리학, 불교학, 천문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에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며,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한 실학자로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대표적인 서예가로서 특히 예서, 행서의 새 경지를 이룩했으며, '추사체'를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옛날 타이포 그래피 디자이너셨네요^^ 추사고택에서 찍은 추사체입니다.

  문득 추사고택을 건축한 건축가가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봤습니다.


  "고택은 영조의 부마이며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金漢藎)이 건립한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서 당시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라고 합니다.

 김한신(金漢藎)에 대하여
1720년(숙종 46)∼1758년(영조 3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유보(幼輔). 아버지는 영의정흥경(興慶)이며, 어머니는 황하영(黃夏英)의 딸이다.

1732년에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和順翁主)에게 장가들어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제용감제조를 지냈다.

키가 크고 인물이 준수했으며 재주가 총명하였다. 특히, 글씨를 잘 썼으며, 그 중에서도 팔분체(八分體)에 뛰어나, 애책문(哀册文)·시책문(諡册文) 등을 많이 썼고, 전각(篆刻)에도 뛰어나 인보(印寶)를 전각하였다.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수원에서 스쿠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와 해메다가 결국 오후 4시쯤 도착하였습니다. ㅎㅎ

  아직 스쿠터 여행 초기라 엄청 해맸었죠... 중간에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여쭤보며 한참을 헤맸습니다...ㅠ

  .

  추사고택은 잘꾸며져 있고 주변경치도 좋아서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도 손꼽히는데요. 제가 도착했을때도 한무리의 SBS촬영팀이 와 있었습니다.

  음.... 드라마 이름은 기억나진 않지만, 혹여나 연예인들을 볼까봐 기대했지만...끝내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ㅠ

  드라마를 찍는다고 추사고택 내에 있는 시설물들을 영화분위기에 맞게 고치고 있었죠..... 부시고, 심고.....;;;



  추사고택 내로 들어가는 솟을대문 입니다. 조선시대 양반은 주변지역에 대해 상당히 높은 단계의 지배권을 갖는 지역의 통치자였습니다. 반가는 주변 농가와 대비되어 통치자의 권위와 위계를 과시할 사회미로 무장해야 했는데요. 그 역할을 솟을대문이 담당했었죠.  서양이 지배계층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높은 건물을 짓고 많은 장식을 한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의 솟을대문은 바깥세계와 일정한 분리를 이루어 반가 자신에 독립성을 줌으로써 권위를 지킴과 동시에 주변마을과 동질화를 이루어 공동체의식을 형성하고 화목을 도모하는 양면작전인 것입니다.

우리의 그것은 담백하다는 것이죠. 욕심이 없습니다. 최소한의 장식으로만 해냅니다. 층계의 차이로도 구분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주위와 어울립니다. 혼자튀지 않습니다.

  외국의 화려한 고 건축보다는 외소하지만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는 이런형식의 건축이 더 좋네요^^




  제가 여행다녔을때 당시 그렸던 스케치입니다. 어잌후 벌써 2년이나 지났네요.....

  5분만에 그린 스케치라 날림입니다..ㅎㅎ


  공간을 느껴보기전에 추사고택의 평면 배치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검은색의 부분이 솟을대문입니다.

  곧바로 들어가면 'ㄱ'형태의 사랑채가 있습니다.(주황색부분) 사랑채는 집의 주인이 사는 공간인데요. 남자가 사는 공간으로 접대용 공간, 서재 등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앞의 마당이 사랑마당입니다.

  그리고 더 들어가면 'ㅁ'형태의 안채가 있습니다.(옥색부분) 안채는 안주인이 사는 공간입니다. 여성들이 사는 곳으로 주방등 여성들의 공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뒷부분에 사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은 추사 김정희를 모신 부분으로 제일 중요한 위치에 있죠.




  자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곳곳에 추사김정희의 추사체로된 글들이 보입니다^^




  아아 가슴아프게...제가 간 그때에는 촬영을 위해 내부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습니다...ㅠㅠ 사랑채와 마당이 공사판이 되어 있었습니다...ㅠㅠ
   도대체 무슨 장면이길래 이렇게 초토화가 되어있었을까요...?;;;


  어쩔 수없이 다른공간을 느껴보기 위해 안채로 들어갑니다.



 'ㅁ'자 배치의 안채입니다. 이 공간은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조금 마당 자체도 좁고 햇빛이 비춰지는 공간도 상당히 적습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목입니다.













  사당은 조선시대 반가에서 조상의 신주(위패)를 모신 건물로, 주로 중상류주택에 건축되었습니다. 사당은 거주자들의 일상행동을 제어하는 상징적 공간이자 조상신이 거주하는 상위공간으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중심성 및 정신적 의미로서 위계성.영역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당은 안채와 사랑채를 짓기 전 제일 먼저 지어야 하고 대개 안채의 동쪽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집을 수리하거나 이건할때를 제외하고는 사당을 헐지 않을 정도로 사당은 중상류층의 주거공간에서 상당히 중요한 존재이죠...

  추사고택의 사당에는 당연히 추사 김정희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협문입니다. 협문은 중심축선상이 아닌 측면 부속건물로 이동하기 위해 샛담에 달린 문을 가리키는데요.

  사당으로 들어가는 협문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도록 되어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조상들이 모셔져있는 공간에 들어서는 문이니 만큼 예의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사당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사당은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조상들이 후손들의 일상생활을 제어한다는 상징적 공간인 만큼 아래의 사랑채와 안채가 훤히 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깥으로 보여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어색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풍경.... 이것이야 말로 한옥의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추사고택은 정말 아름다운 공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류층의 주거공간 배치를 볼 수있는 공간일뿐더러 무엇보다 건물 자체가 자연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솟을대문과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이어지는 공간배치.

  제가 갈때는 추사고택 기념관이 따로 없었던것 같은데 요새는 기념관도 생겼나 보더군요^^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한번 가봐야겠습니다.